비타민C(아스코르브산)의 역사와 대영제국 탄생의 비밀 :: 쉽게 풀어쓰는 약의 역사, 약 이야기
  • 2023.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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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타민C는 요즘 현대인들에게는 영양제로 인식하고 있지만, 분명한 의약품이 맞습니다. 비타민C는 창상 치유와 콜라젠 합성 등 다양한 필수 생물학적 기능을 중개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비타민C의 결핍은 콜라젠 합성 장애를 일으켜 괴혈병의 심각한 증상을 일으킵니다. 재미있게도 이 괴혈병이 대영제국의 탄생과도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비타 C의 발견 역사와 이 영양소의 결핍인 괴혈병이 바꾸어 버린 세계사를 알아보도록 합시다.

     

    비타민 C(아스코르브산)의 역사비타민 C(아스코르브산)의 역사비타민 C(아스코르브산)의 역사
    비타민 C(아스코르브산)의 역사

     

    비타민C 결핍, 괴혈병이란?

    현대인은 영양 결핍을 거의 겪지 않기에 괴혈병이라는 단어 자체도 생소할 것입니다. 초기 괴혈병 증상으로는 탈진, 피로, 손발 통증 등이 있습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적혈구 감소, 잇몸 질환, 모발 변화, 피부 출혈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괴혈병이 악화하면 상처 치유가 힘들어져서 결국 감염 또는 출혈로 말미암은 사망까지도 갈 수 있는 무서운 병입니다.

    많은 동물은 독자적인 비타민 C를 생산하고 있지만, 인간을 비롯한 몇몇 동물들은 스스로 이 영양소를 합성해 낼 수 없기에, 과일과 채소의 섭취를 통해 이것을 보충해서 괴혈병을 예방해야 합니다.

     

     

    대항해 시대와 괴혈병

    인간의 몸 안에서 스스로 비타민C를 합성해 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대항해 시대 배 안에서 오랜 시간 충분한 과일과 채소의 섭취 없이 지내야 했던 뱃사람들은 이유도 모른 채 아프고, 결국 죽기까지 했습니다. 그 시절 뱃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했던 병이 페스트와 같은 전염병도 아닌 괴혈병이었다고 하니 대항해 시대에 가장 골칫거리였을 것입니다.

    괴혈병은 물론 대항해 시대에 인류에게 처음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바이킹, 십자군에게서도 괴혈병으로 추정되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빙하시대를 겪으며 영양 부족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선사시대 시체에서도 발견되었을 정도로 인류의 긴 역사와 함께한 지 오래된 질병이었습니다.

    하지만 장시간 동안 배를 타야 하는 대항해 시대를 맞이하여, 괴혈병이 모든 강대국의 골칫거리가 되면서 드디어 이 병이 조명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비타민 C(아스코르브산)의 역사비타민 C(아스코르브산)의 역사비타민 C(아스코르브산)의 역사
    비타민 C(아스코르브산)의 역사

    괴혈병 특효약의 발견

    1747년, 영국 해군 소속 군의관이었던 제임스 린드는 괴혈병 치료법을 찾기 위해 여러 고민 끝에 한 실험을 했습니다. 같은 장소로 한정된 열두 명의 괴혈병 환자를 두 명씩 여섯 조로 나누어, 같은 일반 식단을 먹이면서 각각 사과 과즙, 황산, 식초, 바닷물, 오렌지와 레몬, 마늘 반죽을 추가로 먹이는 실험이었습니다. 같은 장소와 같은 식단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최초의 통제된 임상시험으로 인정되기도 하는 역사적인 실험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실험을 통해 감귤류가 괴혈병의 특효약임을 알아내면서 괴혈병 종식에 크게 이바지하게 되었습니다.

     

     

    괴혈병과 대영제국

    제임스 린드 덕분에 괴혈병 원인의 해답에 가까이 다가간 영국에서 18세기 후반, 제임스 쿡 선장은 선원들에게 채소절임을 먹게 하면서 항해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괴혈병에 걸린 선원이 한 명도 나오지 않으면서 세계 일주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의 이러한 대항해 시대 업적은 하와이 제도 발견, 뉴질랜드 측정, 남극권 진입 성공 등 인류 뱃길의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쿡 선장의 뱃길 발견 이후로도, 영국은 괴혈병 예방을 위해 라임 주스를 해군들에게 마시게 하면서 괴혈병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19세기 영국이 전 세계 바다를 정복하고 모든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에 성공하면서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해군들에게 공포였던 괴혈병을 극복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비타민 C(아스코르브산)의 역사비타민 C(아스코르브산)의 역사비타민 C(아스코르브산)의 역사
    비타민 C(아스코르브산)의 역사

     

    쿡 선장이 괴혈병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요? 대항해 시대의 다른 위대한 모험가인 바스쿠 다 가마, 또는 페르난디드 마젤란이 괴혈병을 먼저 극복했다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실제로 바스쿠 다 가마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 때, 160명의 선원 중 무려 100명 이상이 괴혈병으로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바스쿠 다 가마나 마젤란이 쿡 선장보다 먼저 채소절임의 효능을 알았다면 더 많은 뱃길을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요? 그랬다면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이 대영제국의 자리를 가져갔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쿡 선장은 18세기에 성공한 것이고, 바스쿠 다 가마와 마젤란은 14세기와 15세기 활동한 탐험가들이니, 여러 뱃길의 발견도 훨씬 앞당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비타민C의 발견

    1930년대 생화학계는 괴혈병의 정확한 원인물질을 찾는 데 혈안이 되어갔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과일과 채소를 먹으면 괴혈병에 좋다는 것은 알지만,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과학계는 그 영양소의 정체를 알고, 추출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비타민 C(아스코르브산)의 역사비타민 C(아스코르브산)의 역사비타민 C(아스코르브산)의 역사
    비타민 C(아스코르브산)의 역사

     

    마침내 헝가리의 생화학자 센트죄르지가 소의 부신피질에서 환원성 물질을 추출하여 '헥슬로산'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 헥슬로산을 동물에게 일정량 먹이면 괴혈병을 예방할 수 있음을 증명하였습니다. 이 연구는 1932년에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로 알려진 네이처에 실리면서 비타민C의 발견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발견으로 그는 193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1933년에는 영국의 화학자인 월터 노먼 하워스가 비타민C의 구조를 밝혀내고, 저렴한 포도당에서 합성해 내는 방법을 알아내는 데에 성공하면서, 대량생산의 길도 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헥슬로산'이라는 이름도 '괴혈병에 저항한다'라는 의미의 '아스코르브산'으로 바꾸었습니다. 그 역시 이 발견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렴한 합성법의 발견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일반인들에게 비타민C는 친숙한 영양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