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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핀은 현재 인류가 사용하는 가장 오래된 의약품입니다. 모르핀은 진통제의 홍수 속에 있는 현대 의약계에서조차도 100년 전 개발된 모르핀을 능가할 만큼 강력한 효과의 진통제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을 정도로, 모르핀의 효과는 강력합니다. 오늘날에도 말기 암 환자나 중증 환자에게 사용될 정도로 극심한 통증을 완화해 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효과가 있는 모르핀의 오래된 개발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인간은 통증에 매우 취약하기에, 진통을 완화하는 물질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가장 절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절박한 노력 끝에 인류는 강력한 진통제인 '모르핀'을 개발해 내게 되었습니다.
5000년 진통제 역사의 시작, 아편
양귀비꽃이 떨어지면 씨방에서 하얀 즙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하얀 즙을 모아서 말리면 그 유명한 '아편'이 만들어집니다.
아편의 효과는 이미 신석기 시대부터 알려진 듯합니다. 스위스에서 발견된 신석기 유적에서 양귀비를 재배한 흔적이 있었다니, 무려 5,000여 년 전입니다. 또한, 문명이 시작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점토판에서도 아편을 채취하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이집트, 키프로스에서도 3,000여 년 전의 아편 사용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즉, 모든 문명에서 광범위하게 아편의 효능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편 외의 초기 진통제들
아편 외에도 통증을 완화하는 초기 약리학적 방법은 알코올, 대마, 맨드레이크 등의 활용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기원전 400년경에 쓰인 고대의 한 인도 작품에서는 통증을 느끼지 않기 위해 수술 전 알코올을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오늘날 약학도들에게 '디오스코리데스의 선서'로 유명한 그리스 외과 의사 디오스코리데스는 사지 절단 전 와인을 섞은 맨드레이크를 복용할 것을 권장했습니다.
중세까지 와서도 확실한 진통제는 개발되지 못한 채, 13세기 의사였던 테오도릭은 아편, 맨드레이크, 뽕나무, 양상추 등의 마취물질을 혼합한 스펀지를 코로 맡은 후 수술을 하는 방법을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호기심 많던 20살 약제사의 도전
1803년 독일의 아주 젊은 20살 약사 수습생 프리디리히 빌헬름 제르튀르너는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제르튀르너는 아편의 약효가 일정하지 않고 제각각이라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약간의 투여에도 빠른 약효가 있는 아편이 경우가 있는가 하면, 몇 배를 투여해도 천천히 나타나는 아편도 있었던 것입니다. 즉, 아편의 원산지나 제조된 시기가 약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가설하에, 아편의 원액을 추출해 약효의 균일함을 만들어 내는 것에 도전하게 됩니다.
모르핀의 추출 성공
수많은 시도를 거친 후, 그는 아편에서 백색의 결정인 크리스털을 추출해내는 데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제르튀르너는 아편에서 추출한 이 크리스털을 개와 쥐에게 투여한 결과 수면 유도에 효과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용량과 효과에 관한 거듭된 연구 끝에 1817년 제르튀르너는 이 크리스털을 자기 자신과 3명의 소년, 3마리의 개, 1마리의 쥐에 투여한 실험을 보고하며, 이 물질이 수면 유도와 진통 완화에 효과가 있음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물질이 수면을 일으키는 효과도 있었기에, 제르튀르너는 그리스 꿈의 신 모르페우스의 이름을 따서 모르피움이라 이름을 지어, 오늘날 모르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모르핀의 초기 대중화 실패
모르핀은 1827년 독일의 머크사에 의해 경구형태의 상품으로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지만, 낮은 가격으로 생산해내기 어려웠기에 비싼 가격으로 책정되면서 인기를 얻는 데 실패합니다.
1831년 에든버러의 의사이자 화학자인 윌리엄 그레고리가 모르핀을 분리하고 정제하는 저렴한 방법을 발견했지만, 여전히 대중화에는 실패했습니다. 기존에 사용되던 아편 알칼로이드 경구 물질들과 비교하면 비용이나 임상적 이점이 없었고, 의학계와 대중들은 익숙한 물질들의 사용을 지속했기에 초반에는 널리 사용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주사기 개발이 이끈 대중화
초창기 대중화에 실패한 모르핀은 1850년대에 완벽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해서야 커다란 인기를 얻게 됩니다. 바로 피하 주사를 통한 약물 투여였던 것입니다. 1853년 에든버러의 알렉산더 우드는 주사기와 속이 빈 바늘을 이용한 약물 투여의 새로운 방법을 발견합니다. 기존에도 주사기와 속이 빈 바늘은 존재했으나, 이를 변형하여 구멍이 뚫린 바늘과 주사기 몸통이 있는 현대적 모습의 주사기가 처음 사용된 것입니다. 이렇게 피하 주사법이 적용되고 나서야 빠르고 모르핀의 강력한 진통 억제 효과가 나오기 시작하며, 모르핀의 대중화가 시작됩니다.
모르핀 중독이 일어나는 이유
모르핀은 중독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사실 중독의 문제가 나오기 전 모르핀은 강력한 통증 완화 효과뿐만 아니라, 심신의 안정에 도움과 수면 장애까지 해결해 주면서 '만병통치약'의 지위를 얻어가는 듯했습니다. 특히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남북전쟁 등 근현대사 전쟁의 시대에 중요한 보급품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부작용도 심각하게 주목받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남북전쟁 동안 수많은 중독자를 만들어 내며 '군대 병'이라는 중독 병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부작용이 심각해지면서, 과학계는 모르핀이 천사와 악마의 두 얼굴을 지니게 된 약리적 작용을 해명하고자 연구를 거듭하게 되었습니다.
그 해답은 상당히 오랜 시간 뒤에 밝혀지게 되었는데, 1970년대에 되어서야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해답은 모르핀이 인간에게 쾌락을 일으키는 엔돌핀과 유사한 구조를 가졌다는 점이었습니다. 비슷한 구조를 가졌기에 엔돌핀이 할 수 있는 강력한 통증 완화와 심신 안정을 할 수 있지만, 장기간 사용 시 우리 인체는 엔돌핀의 양을 충분하다고 인식하면서 엔돌핀의 자생적 공급을 멈추게 됩니다. 결국, 우리 몸이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엔돌핀의 자생적 공급 중단을 유발하여 금단현상 및 각종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 부작용으로 모르핀은 '마약성 진통제'로 지정되어서, 중증 환자에게만 공급될 수 있는 의약품의 역할로 한정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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