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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로이드를 정의하는 한 단어라면, 바로 '만병통치약'이라는 단어일 것입니다. 스테로이드는 피부염부터 시작해서 천식, 류머티즘 관절염까지, 염증이 있다면 스테로이드가 거의 다 사용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 스테로이드가 사실은 2차 세계대전에서 뜬소문 덕분에 개발이 빨라졌다고 합니다. 스테로이드의 역사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부신 호르몬 연구
스테로이드의 발견은 1929년 미국 메이오 클리닉의 흉부외과 의사인 헨치 박사와 생체 화학자 켄들 박사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함께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의 치료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1929년 4월 1일 헨치 박사는 한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를 치료했는데, 그의 증상은 황달을 동반하다가 불가사의하게 사라졌습니다. 또한, 헨치 박사는 임신 중 또는 최근 수술을 한 환자들의 류머티즘 증상의 개선을 관찰하여, 특정한 의학적 조건이 항 류머티즘 물질의 방출을 유도한다는 가설을 도출해 냅니다.
이들은 '부신(adrenal glands)'이라 불리는, 신장에 붙어있는 작은 기관에서 만들어 내는 호르몬에 주목하며, 부신과 관련된 이 물질을 찾아내고자, 시카고 도축장에서 정기적으로 부신 조직을 운송하기도 하였습니다. 마침내 켄들 박사는 소의 부신으로부터 6개의 호르몬을 분리하는 데 성공해, 각각 A부터 F까지 문자로 식별했습니다. 그 중 4개의 화합물인 A, B, E, F는 생리적 활성을 가지고 있었고, 이들 중 화합물 A와 화합물 E는 구조적 단순성 때문에 초기 연구를 위해 선택되었습니다.
2차세계대전 소문에서 시작된 연구 지원
1941년, 미국은 뒤늦게 제2차 세계 대전에 개입했었지만, 독일군에게 공중전에서 밀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공중전의 승패는 누가 더 높은 고도를 선점해서 빠르게 공격하느냐가 좌우했었습니다. 하지만 높은 고도는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저산소증을 일으켰고, 조종사들이 저산소증을 극복해서 높은 고도로 올라가는 것이 당시 공중전 승리의 열쇠였습니다. 하지만 독일군은 무려 4만 피트까지 올라가, 3만 피트까지밖에 정복하지 못한 미국 전투기들을 격추했습니다.
미국 연방정부가 공군의 공중전 고전에 대해 상당한 고민을 하던 시점에, 미국정보부가 하나의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독일군이 비밀리에 소의 부신을 아르헨티나에서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다는 정보였습니다. 결국, 이 정보는 독일 과학자들이 전투기 조종사들의 저산소증을 막으며 높은 고도에서 비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부신피질 추출물을 생산하고 있다는 소문으로 미국 국방성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응한 연방정부는 화합물 A와 E를 둘러싼 연구에 아낌없이 자금을 지원하였고, 스테로이드 연구는 페니실린 및 말라리아 치료제에 대한 약물 개발보다 우선하는 연구가 되었습니다.
스테로이드 개발 중 밝혀진 소문의 진위
1942년 Merck and Company의 화학자 루이스 사렛 박사는 켄들 박사의 실험실에서 3개월 동안 작업한 후, 화합물 A와 E를 대량으로 합성하는 방법의 개발을 목표로 머크사로 돌아왔습니다.
스테로이드의 생산 가능량이 적었기에, 처음에는 스테로이드 사용을 작은 동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국한하고 비스테로이드를 임상 의학 영역에서 사용해야 했습니다. 화합물 A는 동물에게 적용 시 생리적 활성을 입증했지만, 애디슨병을 앓는 환자에게는 유익한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화합물 E로 빠르게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독일군이 신비의 물질을 사용해서 높은 고도 비행을 가능케 했다는 이야기는 거짓으로 판명이 나면서, 연방정부는 재빠르게 지원은 빠르게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머크사와 두 박사는 이 화합물에서 분명한 가능성을 보았기에, 자체적으로 함께 협력하며 이 연구를 지속해 나갔습니다.
코르티손의 탄생
마침내 그들은 첫 임상시험을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1948년 심각한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메이요 클리닉에 29세 여자 환자를 대상으로, 화합물 E를 소량으로 주사했습니다. 이틀 후, 두 번의 추가 주사 투입 후 환자는 걸을 수 있었고 병원을 떠나 무려 3시간 동안이나 쇼핑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7개월 동안 메이요 클리닉에서 30명의 환자에게서 기적적인 유사 결과가 관찰되었습니다.
1949년 헨치 박사는 비타민 E와의 혼동을 피하고자 코르티코스테론의 대명사인 화합물 E에 '코르티손'이라는 일반명을 부여했고, 이것이 오늘날 스테로이드 호르몬인 코르티손이 되었습니다.
연방정부의 지원이 끊긴 후에도 본인들의 연구에 믿음을 갖고 최종적인 결과물을 도출해 낸 켄들 박사와 헨치 박사는 이 공로로 1949년에 노벨상의 영예를 얻게 되었습니다. 업적이 발표된 후 이렇게 빠른 수상은 절대 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이것이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고통스러워하던 환자를 일으켜 세울 정도로 기적의 의약품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양날의 검이 된 스테로이드
스테로이드는 기적의 효과만큼이나 부작용으로도 악명이 높습니다. 스테로이드를 일반인이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칼을 쥐여주는 것'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효과가 매우 다양하고 확실하기에, 자칫하면 일반인들이 오용과 남용을 할 가능성이 크고 그 부작용이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칼을 쥐고서 놀다가 크게 상처를 입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동네 의원급들에서도 '빨리 낫게 해주는 병원'이 되고 싶어서 스테로이드를 남용하는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양날의 검일 수 있는 스테로이드는 그래도 잘 사용하면 '만병통치약'이 맞기에, 반드시 전문가와 잘 상의해서 각별한 주의 하에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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