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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레놀은 가장 대표적인 해열진통제입니다. 아스피린도 같은 해열진통제이지만, 차이가 있다면 아스피린은 소염 기능이 있고 위장장애의 부작용이 있지만, 타이레놀은 소염 기능은 없으면서 부작용이 거의 없으므로, 두통, 치통, 생리통과 같은 일상생활 진통과 단순 해열을 위해서는 아스피린보다는 타이레놀 복용이 권장됩니다. 즉, 부작용이 없는 해열진통제라는 점에서 가정에서 반드시 상비약으로 갖고 있게 된, 우리의 일상에 매우 친숙한 의약품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의약품이 된 이 약도 우연한 실수에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약사의 실수에서 시작한 타이레놀의 역사
1886년, 프랑스의 아놀드 칸 박사와 폴 헵 박사는 장내 기생충으로 고통받는 환자를 치료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프탈렌의 장내 기생충 효과를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연구 중에 나프탈렌이 떨어지자, 그들은 근처 약국에 더 많은 나프탈렌을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경험이 부족한 약사가 실수로 나프탈렌 대신 아세트아닐라이드로 약을 채워 보냈던 것입니다. 아세트아닐라이드는 프랑스 화학자 샤를 프레드릭 게르하르트에 의해 1852년에 발견되었지만, 당시에 아세트아닐라이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약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약사의 실수가 중요한 발견을 이끌어 내게 됩니다.
잘못 배달 온 아세트아닐라이드를 처방하게 된 이들은 이 약물이 장내 기생충과 함께 고열을 앓고 있던 환자 중 한 명에게 상당한 해열 효과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결국, 칸 박사와 헵 박사는 아세트아닐라이드를 계속 처방하면서, 이 약물이 가진 진통제의 효능을 알아차렸습니다. 이렇게 우연한 발견으로 효능이 알려지면서 과학계는 아세트아닐라이드의 원리에 관해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899년이 되어서야 독일의 칼 뫼르네르에 의해 아세트아닐라이드와 아세트아미노펜의 관계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는 아세트아닐라이드가 몸에서 대사되어 아세트아미노펜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세트아미노펜
10년 후, 독일의 의사 요제프 폰 메링은 처음으로 아세트아미노펜을 합성했습니다. 그는 임상시험에서 아세트아미노펜이 통증과 발열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피부가 푸른색으로 변하는 청색증을 발견했습니다. 사실 이 실험은 불순물 때문에 잘못 도출된 결과였음에도, 50년 넘게 아세트아미노펜은 부작용이 있는 화합물로 인식되며 처방되거나 연구되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1949년이 되어서야 영국에서 현대적인 연구 기술과 임상 시험을 통해 해열제와 진통제의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했습니다.
맥닐 연구소의 새로운 진통제 연구
1940년 후반, 맥닐 연구소는 다른 형태의 진통제 출시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당시,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소화기내과 대학원의 제임스 로스 박사 또한 아스피린의 위험성에 대해 미국 전역에서 강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세트아미노펜을 옹호하기 시작했습니다. 로스 박사는 맥닐의 주요 컨설턴트가 되어 이 화합물에 대한 회사의 관심을 끌어냈습니다.
1951년, 진통제 및 진정제 연구소가 후원하는 뉴욕시의 과학 심포지엄에서 아세트아미노펜의 안전성과 효능이 설명되었습니다. 이 심포지엄에서 보고된 연구에 따르면, 아세트아미노펜은 진통 완화와 해열에는 아스피린만큼 효과적이지만 아스피린의 부작용으로 알려진 위 염증, 위장 출혈, 혈액의 정상적인 응고 장애 등의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이 약의 안전성과 효능에 확신한 맥닐 연구소는 아세트아미노펜에 대한 자체적인 광범위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타이레놀의 출시와 성공
1955년 봄, 맥닐은 회사의 첫 번째 단일 성분 아세트아미노펜 제품인 어린이용 타이레놀을 선보였습니다. 'TYLENOL'이라는 상표명은 맥닐의 전문 영업 팀이 화학 이름에 포함된 일부 문자를 사용하여 만들었습니다. 이 약은 출시 직후부터 엄청난 성공을 거뒀는데, 이는 독특한 마케팅 전략 덕분이었습니다. 의료 전문가들에게 아스피린의 바람직하지 않은 효과를 알리고 이러한 효과에 취약한 환자들에게 이 신약을 추천하도록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맥닐의 의약품 판매원에 의해 처방 제품으로 의사와 약사에게 직접 판매된 타이레놀은 아스피린의 안전하고 효과적인 대안으로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1960년에는 미국 FDA에서 처방 없이 판매할 수 있는 일반 의약품으로 지정되면서, 더욱 대중화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에는 드디어 타이레놀이 아스피린의 판매액을 능가하며, 해열진통제의 선두주자가 되었습니다.
시카고 연쇄 사망사건
존슨앤존슨이 맥닐연구소를 인수하면서, 타이레놀은 존슨앤존슨을 대표하는 상품이 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 해열진통제가 되면서 인기를 구가하던 1982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7명이 연쇄적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사인을 분석한 결과, 이들이 모두 타이레놀을 복용했다는 사실이 발표되면서 존슨앤존슨 주가는 폭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검사 결과 마트진열대에서 당시 캡슐제이던 이 약의 캡슐 안에 누군가 청산가리를 넣은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존슨앤존슨으로서는 억울한 상황이었지만, 시장 점유율은 35퍼센트에서 7퍼센트로 급락을 했습니다.
이에 존슨앤존슨은 특별 조치로 시카고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의 타이레놀을 전량 회수하고, 생산과 유통도 중지시켰습니다. 심지어 대표가 뉴스에 출연해서, 복용을 멈추라고 권고하고, 처리에 관한 모든 정보와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했습니다. 존슨앤존슨은 약의 외관도 캡슐제에서 정제로 바꾸고, 밀봉법도 새롭게 바꾸면서, 재발의 위험도 제거했습니다. 그 결과, 점유율은 30퍼센트로 다시 회복하며 위기를 지혜롭게 넘긴 대표적 성공 사례가 되었습니다.
복제약도 괜찮을까?
최초의 아세트아미노펜 단일성분 제제인 타이레놀은 이미 특허가 만료되었기에, 같은 성분으로 출시된 복제약들이 국내에만 66개에 이릅니다. 하지만 콜라에서는 코카콜라라는 특정 상표의 제품이 대명사가 되었듯이, 아세트아미노펜도 타이레놀이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유행하던 최근에도, 보건당국이 백신 접종 후 부작용이 있을 시에 아세트아미노펜 계열 약을 먹을 것과, 권장 의약품에 공개적으로 타이레놀을 언급하면서 이 특정 약의 품절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의약계에서는 사실상 같은 약이라고 단언하고 있기에, 굳이 타이레놀만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즉, 복제약을 먹어도 효능은 거의 같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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